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패트릭 유잉 (문단 편집) ==== 기적의 8번 시드, 기적의 파이널행 ==== 1998-99 시즌, 선수노조의 파업에 의한 직장폐쇄로 인해 단축시즌이 열리게 되었다. 이 즈음 유잉은 이미 전성기의 실력을 잃었고, 농구선수에게 치명적인 아킬레스건 부상에까지 시달리고 있었다. 팀 또한 더 이상 유잉에게 미래를 기대하지 않았고, 슈팅 가드인 [[앨런 휴스턴]]을 실질적인 에이스로 여기고 있었다. 여기에 오랜 동료였던 스탁스와 오클리를 보내고 [[라트렐 스프리웰]]이라는 걸출한 ~~또라이~~슈팅 가드를 영입해 트윈 테러를 결성함과 동시에 더불어 젊은 센터 [[마커스 캠비]]를 영입하면서 유잉의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작된 시즌, 유잉은 캠비의 영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전 센터로 출장했다. 전년에 비해 현격히 감소한 득점력은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유잉은 여전히 골밑에서 상당한 존재감을 과시했고, 그를 통해 공격을 책임지는 트윈 테러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하지만 시즌을 치를수록 아킬레스건 부상이 악화되어 가던 유잉은 시즌 개막 후 약 한달 뒤 밀워키 벅스전에서 점프볼 후 착지 과정에서 아킬레스건에 충격을 입고 그대로 경기에서 이탈~~점프볼만 뛰고 퇴갤~~한 뒤 부상자 명단에 올랐으며, 유잉의 이탈 후로 팀 성적 또한 곤두박질치며 플레이오프 진출 여부를 놓고 다퉈야만 하는 신세가 된다. 하지만 유잉의 컴백과 함께 다시 승수를 쌓아나가기 시작하며 샬럿 호네츠를 1게임차로 간신히 따돌리고 결국 막차인 8번시드를 획득하여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언제나와 같이 시작된 플레이오프. 8번 시드로 진출한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마이애미 히트는 팻 라일리의 지휘 아래 알론조 모닝과 팀 하더웨이를 주축으로 그 옛날 닉스만큼 전투적인 수비를 선보이며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다. 대부분 전문가들이 마이애미의 원-사이드 승리를 예상했다. 그러나 유잉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수비에 집중하며 팀을 이끌었고, 특히 최종전이었던 5차전에서 알론조 모닝을 공수에서 압도하는 엄청난 활약을 보이며 8번 시드로 1번 시드를 격파하는 쾌거를 이끌어냈다. 특히 유잉은 이 당시 치명적인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사실상 공격에서는 거의 참여가 불가능한 수준이었지만, 수비에서는 그야말로 상대를 압살하는 수준이었다. 특히 1라운드 첫 경기에서 사실상 뛸 수 없던 상태였음에도 무려 32분여를 출전하면서 9득점 15리바운드 4블록을 기록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그 이후로도 5차전까지 전 경기를 출전한 것도 모자라 5차전에서는 무려 40여분을 출전하며 22점 11리바운드를 기록, 무려 NBA 역사상 1번 시드를 1라운드에서 격파한 두 번째 팀이 됐다. 1라운드에서 1번 시드를 꺾으며 사기가 오른 닉스는 상위 시드인 애틀랜타 호크스를 4연승으로 스윕시키며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다. 정규 시즌 성적은 단연 애틀랜타의 우위였고 수비의 핵 [[디켐베 무톰보]]를 축으로 탄탄한 전력을 구축한 팀이었지만, 당시 이미 인간탈환의 경지를 넘어선 유잉의 인간승리와 닉스의 신들린 플레이에 애틀랜타는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4게임 연속으로 완패를 당하는 굴욕을 맛봤다. 인디애나와의 컨퍼런스 파이널 1차전에서 유잉은 제대로 걷기도 힘들어보일 정도로 아킬레스건 상태가 좋지 못했다. 심지어 주변 지인들 마저 "왜 몸상태가 저지경인데 아무도 말리지 않느냐."는 반응까지 나왔을 정도. 심지어 고질적인 부상 부위였던 무릎 부상도 다시 악화되면서 사실상 공격 가담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유잉은 그 몸으로 무려 40분을 뛰며 16득점 10리바운드로 인사이드를 지키며 팀의 선승에 공헌했다. 선수 시절부터 소름끼칠 정도의 냉정함과 포커페이스로 유명한 인디애나 감독 [[래리 버드]]마저도 경기가 끝나고 난 뒤 벙찐 표정으로 "유잉의 아킬레스건 부상에 대해서는 이골이 날 정도로 들어서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유잉이 정말 부상 선수가 맞긴 한거냐? 만약 우리팀의 릭 스미츠가 오늘 그처럼 뛰었다면 앞으로 우린 그를 1년 동안은 볼 수 없었을 거다." 라는 말로 팀 패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팀 주전 선수까지 디스해가며 유잉의 투혼을 이례적으로 칭찬하였고, [[레지 밀러]] 또한 유잉에 대한 존경심을 숨기지 않았다.~~슬램덩크에서 이정환이 채치수의 발목부상 투혼을 보며 "내가 상대방의 플레이어를 존경하기는 처음이다" 실사판 등장~~ 하지만 결국 2차전에서 우려했던 사태가 벌어진다. 유잉은 그 다음 2차전에도 변함없이 출전했으나 이미 그의 신체능력과 정신력은 한계점을 한참 지나간지 오래였다. 그 전부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시한폭탄같았던 그는 결국 2차전에서 무릎, 아킬레스건에 동시다발적으로 빨간불이 들어오고 만다. 유잉은 2차전에서 경기 종료 2초 전 와이드 오픈 찬스로 역전 찬스를 잡았지만, 그는 이미 무릎과 아킬레스건이 마비되다시피 하여 아예 하체를 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결국 상체와 양쪽 팔[* 오른쪽 손목 역시 전 시즌 치명적인 골절, 인대 부상으로 사용이 거의 불가능했던 수준이었다.]로만 슛을 던졌다. 이 슛은 결국 여지없이 빗나갔고, 이것은 사실상 유잉의 시즌 아웃을 의미했다. 닉스 팬들은 역전을 하지 못한 것 보다 더 이상 유잉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했다. 심지어 2차전이 끝나고 난 후 더 이상 출장을 강행한다면 농구선수로서의 생명이 끝날 수 있다는 의료진의 경고까지 받게 되었고, 유잉은 이후 3차전부터는 더 이상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고 시즌아웃 판정을 받으며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잉의 투혼에 사기가 오른 닉스는 래리 존슨과 마커스 캠비의 분전을 앞세워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8번 시드로는 사상 최초로 파이널에 진출하는 전율의 드라마를 연출해낸다. 기적의 8번 시드 파이널 진출의 역사를 달성할 즈음엔 전 세계의 농구팬들이 뉴욕 닉스의 투혼에 감동하였고, 파이널 상대팀인 스퍼스 팬들을 제외한 나머지 28팀 팬들 대부분이 대동단결하여 닉스를 응원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비록 파이널에서도 출전할 수 없었던 유잉이었지만, 늘 닉스 라커룸에는 가슴 부위에 선명하게 1999 파이널 패치가 붙은 유잉의 유니폼이 걸려있었다. 코트에서 함께 뛰지는 못하지만 마음만은 코트 위의 동료들과 함께 하겠다는, 간절히 우승을 염원하는 유잉과 동료들의 의지였다. 그러나 파이널을 앞둔 닉스는 리더인 유잉을 잃어버린 데 이어, 컨퍼런스 파이널 승리의 1등 공신이었던 마커스 캠비와 래리 존슨마저 각각 가정사와 등부상 악화로 인해 파이널 기간동안 제대로 된 컨디션으로 뛸 수가 없었던 최악의 상황이었다. 스프리웰과 휴스턴의 트윈 테러는 건재했지만, 프론트 코트가 초토화된 닉스에게 있어 데이비드 로빈슨과 팀 던컨의 트윈 타워를 앞세운 스퍼스는 사실상 넘을 수 없는 벽이었고 모든 전문가들이 거의 만장일치로 스퍼스의 우승을 점쳤다. 단 한명의 전문가만이 닉스의 우승을 점쳤을 뿐으로 역대 파이널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원사이드한 예측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닉스는 감독 [[제프 밴 건디]]의 전술과 백업 멤버들의 투혼으로 매 경기를 접전으로 몰아가며 농구팬들을 열광시켰다. 스프리웰과 휴스턴의 트윈 테러는 언제나 그랬듯이 코트를 휘저었고, 정상 컨디션이 아닌 마커스 캠비와 래리 존슨을 대신해 크리스 더들리와 커트 토마스가 스퍼스의 트윈 타워를 맞아 악착같이 버텨냈다. 하지만 결과는 1승 4패로 준우승에 머무르며 시즌을 마감하게 되었고, 그렇게 유잉의 마지막 파이널은 끝이 나고 말았다.[* 당시 애석하게도 뉴욕 언론에서는 트윈 테러를 찬양하면서 부상에 시달리던 유잉을 신나게 까댔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에 감독이었던 제프 밴 건디는 이에 대해 유잉의 공격력은 비록 예전만 못하지만 스탯과 무관하게 팀에게 줄 수 있는 안정감과 수비력, 정신력에서의 공헌이 있기에 비로소 파이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이라며 그런 소리를 지껄이는 인간들은 한마디로 멍청한 놈들이라고 일갈했다.] 하지만 상대팀인 스퍼스 선수들도 닉스의 투혼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마리오 엘리는 우승 달성 후 "만약 패트릭 유잉과 래리 존슨이 정상 컨디션이었다면 시리즈는 7차전까지 갔을 것이고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 지 모른다."는 말로 닉스를 인정했다. 한 마디로 팀과 우승이라는 목적 아래 인간탈환의 [[화룡점정]]을 찍은 유잉과 유잉과 함께 하나가 되어 인간승리라는 극적인 드라마를 만든 뉴욕은 "불가능이란 없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 라는 격언을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솟구치게하는 기적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내고야 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